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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분류

23화

본문

모래성을 쌓기 시작한 지 10분정도 지났을까.

 

권찬은 보이지도 않는 찬영에게 말을 걸며 모양을 내기 시작했다.

 

 

찬영아, 미안해 아빠가 이런거 잘 못해서...”

 

괜찮데요, 자기도 모래성은 처음 만들어봐서 같이 하면 된다네요

 

누나!누나! 여기 더 높이 쌓아달라고 말해줘요!”

 

 

함께 만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찬영은 귀신이라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도 못할뿐더러, 권찬과 제대로 된 의사소통도 할 수 없어 그저 지선이 찬영의 말을 전달해 줄 뿐이다.

 

 

여기 좀 더 높이 쌓아달라하네요

 

...여기? 그래 찬영아, 아빠가 만들어줄게

 

 

사연을 알면 슬픈 일이지만, 어떤 일인지 잘 모르고 봤다면 그냥 정신 나간 아저씨가 혼자 떠들며 모래성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

 

그래도 다행인 점은 해변에는 지선과 권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볼까봐 조바심이 들었지만,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지선의 성격과 찬영을 보고 꼭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모래성 쌓는데 더 집중했다.

 

 

엄마! 엄마도 같이 만들어요!”

 

됐어!!”

 

 

찬영을 보지도 않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다영.

 

이렇게 두어서는 안된다.

 

찬영이 바라는 것은 셋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다영을 반드시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지선과 다정으로는 어떤 말을 해도 바뀌지 않는 마음.

 

불가능에 가깝지만 권찬 혼자서 해결해야한다.

 

 

아저씨

 

..?”

 

찬영이가 아직 하고 싶은게 있데요

 

..어떤거?! 찬영아, 아빠가 다 해줄게 뭐든 말해

 

찬영이가, 아빠랑 엄마랑 셋이서 같이 놀고 싶데요

 

다영이랑...? 셋이서?”

 

, 그런데 찬영이가 부탁해 봤는데 아주머니는 그럴 생각 없으신가 봐요

 

그럼 어떻게 해야해?”

 

아저씨가 직접 설득하셔야죠, 아저씨가 말하는 건 다 들리시니, 용서를 구하든 부탁을 하든, 어떻게 해서라도 같이 하자고 말하세요, 그렇다고 화가 풀리실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아저씨 하기 나름이예요

 

...내가

 

 

권찬은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릴까.

 

어떻게든 해야한다, 잠깐 아주 잠깐이라도 화를 풀고 가족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찬영에게 느끼게 해줘야 한다.

 

 

...여보... 아니, 다영아... 내 말이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나 같은 놈의 말을 듣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들린다면 딱 한 번만 내 말을 들어줘...”

 

싫어!!! 내가 왜 너 같은 쓰레기 말을 들어야 하는데!!!! 내가 그렇게 설명을 해줘도!!! 찬영이가 너 때문에 울고 있어도!!! 넌 내 말 믿기라도 했어?! 우리 말 듣기라도 했냐고!!!”

 

아주머니, 일단 진정하세요

 

 

권찬의 말을 듣고 흥분한 다영을 다정이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내가 화 안나게 생겼어?! 이제 와서 뭐하냐고!! 이미 죽었는 이제 와서!!”

 

아주머니, 한 번만이라도 들어보세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다정은 다영에게 허리를 90도 숙여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찬영도 가만히 볼 순 없었는지 다영에게 다가가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말 한 번만 들어보면 안돼요?”

 

넌 조용히 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 말도 들을 생각이 없는 다영.

 

지선은 현재 다영의 상태를 권찬에게 알려줬다.

 

 

아저씨, 일단 말을 들어달라는 부탁부터 하셔야겠는데요? 아주머니가 듣기 싫다하시네요

 

“...”

 

아저씨..?”

 

 

지선은 불러도 아무 말이 없는 권찬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엎드린채로 흐느끼며 울고 있는 권찬.

 

 

다행이야... 흐윽 내... 내말... 들리는구나...”

 

아저씨, 빨리 어떻게든 해야해요, 저 상태로 계속 두면 언제 악귀로 변할지 몰라요

 

“.... 악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해볼게, 어디있는지만 알려줄래?”

 

저기 모래성 뒤로 열 발자국 정도에 있어요

 

 

권찬은 지선이 알려준 위치에서 두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서 다영을 불렀다.

 

 

다영아...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화가 풀릴지,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도... 어떤 말이라도 해볼게... 진심이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잠깐만요 아저씨

 

 

권찬이 말을 할려 할 때 지선이 뒤에서 다가와 권찬의 앞에 섰다.

 

아직 화를 내고 있는 다영.

 

 

아주머니, 저도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딱 한 번만이라도 아저씨 말 들어주세요

 

넌 또 뭐야!! 또 성불 안시켜준다고 협박하게?!”

 

아뇨, 듣든 말든 성불은 꼭 시켜드릴게요, 그래도 찬영이가 있잖아요, 아주머니를 위해서도 아니고 아저씨를 위해서도 아니예요, 찬영이가 바라잖아요 이대로 찬영이 한이 풀리지 않아 성불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부모는 자식이 행복하길 빌어주는 법이잖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데리고 다닌거 아닌가요?”

 

 

다정과 같이 90도로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부탁하는 지선.

 

다정과 찬영이 아무리 부탁해도 화만 내던 다영이 지선의 말을 듣고 조용히 찬영을 바라봤다.

 

 

“... 5, 다음은 없어

 

 

지선은 다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권찬에게 전했다.

 

 

아저씨, 5분이예요

 

그래, 고맙다...”

 

 

권찬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다영아, 고마워... 나랑 결혼해줘서, 그리고 잠시나마 좋아해줘서, 내가 힘들었을 때 살고 싶은 의지도 없을 때 당신이 나타나줘서 난 살 수 있었어, 당신이 날 살린거야, 게다가 날 살려준 것만이 아니라 찬영이라는 큰 선물을 줬어, 찬영이가 태어나던 날 느꼈어, 당신과 찬영이는 내 인생 전부라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아무리 힘들더라고 당신과 찬영이를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권찬의 천천히 옛 기억을 떠올리며 머리가 아닌 마음 속에서 나오는 말들을 뱉어냈다.

 

권찬이 가장 하고 싶은 말, 지금까지 하지 못 한 말은 용서를 구하거나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닌 다영과 찬영에 대한 감사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한 후회, 이것이 두 번째로 하고 싶고 하지 못 한 말이었을 테다.

 

 

그런데 난.... 내가 몇 번을 감사해도 부족한 사람한테, 내 전부인 찬영이한테 그딴 짓을 하면서 상처를 줬어, 그때 당신 말을 조금이라도 믿었어야 했는데, 조금이라도 생각 했어야 했는데, 둘의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했어... 난 나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야 당신에게 해준 것도, 찬영이가 하고 싶은것도...”

 

 

막히는 목구멍을 억지로 열어 점점 떨림이 심해지는 권찬의 목소리.

 

분명 말을 하기 전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이렇게라도 말을 전할 수 있다는 고마움 때문인지, 이렇게 밖에 말을 하지 못하는 후회 때문인지,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다.

 

 

아무것도 해준 것 없지만, 마지막으로 부탁할게 찬영이를 위해서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옛날 일을 잊어줘, 염치 없는 부탁이지만 이렇게 빌게, 지옥에서 평생 살면서 벌 받는다고 해도 부족한거 알아, 뭐든지 다 할테니까 부탁이야...”

 

 

권찬은 바닥에 엎드려 간절히 부탁을 했다.

 

 

위해서야....”

 

?”

 

찬영이를 위해서... 딱 한 번만이야...”

 

우와아아아 엄마 최고!!”

 

아주머니 최고!!”

 

 

그토록 화만 내던 다영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권찬의 진심이 담긴 말이 아닌 자신의 아들인 찬영이를 위해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 가, 아무리 한이 깊은 귀신이라도 자식 앞에서는 모두 똑같은 부모다.

 

다영의 대답을 들은 다정과 찬영은 기쁨에 취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권찬은 대답을 듣기 위해 권찬은 고개를 들고 지선에게 물었다.

 

 

다영이가... 뭐라고 해?”

 

찬영이를 위해서 한데요

 

“...! 다영아... 고마워... 정말..."

 

그럼 찬영이한테 물어볼게요 뭐 하고 싶은지, 자 찬영아 이제 아빠랑 엄마랑 뭐하고 싶어?”

 

사진이요! 사진 찍고 싶어요!!”

 

그래 그럼, 누나가 휴대폰으로 사진 찍어 줄게, 아저씨 찬영이가 다 같이 사진 찍고 싶데요

 

...사진?”

 

, 휴대폰은 가지고 계시죠?”

 

..어 옛날 거긴 한데...”

 

 

권찬은 자켓 주머니에서 중고 휴대폰을 꺼내 지선에게 건냈다.

 

 

... 아니면 차라리 제 휴대폰으로 찍고 보내드릴게요

 

..그래 줄래?”

 

지선아! 사진은 나한테 맡겨, 내가 예쁘게 찍는 법 알아!! , 세분 모두 바다를 등 지고 저기 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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