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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분류

18화

본문

수 많은 귀신들을 성불 시키다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 금요일이 되었다.

 

일요일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이틀.

 

매일 6, 월요일부터 시작해 지금껏 24, 거기에 방금까지 성불시킨 5명의 귀신까지 합쳐, 29명의 귀신들을 성불 시켰다.

 

 

지선아, 마지막은 이 분이야

 

잘 부탁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어린 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여러 귀신들을 거쳤다.

 

매일 6명이라는 숫자가 부담스럽지만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다.

 

받지 못한 돈을 대신 받는 것에서부터 친한 친구와의 약속, 갖고 싶었던 굿즈 대신 사기 등 생각보다 간단한 일들이라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 할아버지, 한이 어떻게 되시나요?”

 

 

뭔가 이상한 질문, 하지만 너무 많은 귀신들에게 반복적으로 해온 탓인지 지선은 자연스럽게 물었다.

 

 

별 거 아니예요, 일단 갑시다

 

 

분명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지선에게도 깎듯이 존대를 하는 할아버지.

 

갈색 정장에 지팡이까지 짚고 있어 노신사라는 느낌을 제대로 주고 있다.

 

 

... 지선 학생이라고 했나요?”

 

 

, 우리 때문에 수고가 많아요

 

아뇨 별 거 아니예요

 

저번 일은 우리가 미안해요, 부탁하는 입장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게 참 부끄럽네요

 

괜찮아요

 

 

할아버지 귀신은 지선과 나란히 가면서 사과와 고마움의 인사를 건냈다.

 

 

지선 학생은 고민이나 후회하는 일 없어요? 바라는 거라도

 

후회나 바라는 일이요?”

 

, 만약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해결하고 바라는 일이 있다면 이루어 내세요, 그게 힘들다면 시도라도 하세요, 그래야 저희처럼 여기 안남죠

 

 

지선은 할아버지 귀신이 하는 말을 흘려듣지 않고 머릿속에서 계속 되뇌었다.

 

나이 많은 사람의 훈수나 참견이 아닌 경험 많은 사람의 조언이라 생각하며.

 

 

여기예요

 

여긴...”

 

내가 35이였을 때였나, 할멈이랑 결혼해서 애들 낳고 일해서 번 돈으로 처음 산 집입니다, 많이 낡았죠?”

 

 

30분 정도 걸어 도착한 곳은 지선의 집 반대 방향에 있는 달동네 정상.

 

지선의 눈 앞에 있는 집은 당장이라도 쓸어질것만 같았다.

 

나무로 만들어서인지 수차례 있었던 보수 작업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와, 엄청 운치있어요! 할아버지!”

 

허허허, 고마워요

 

 

거짓말을 잘 못하는 지선을 대신해 대답 한 다정.

 

 

그럼 여기서 중요한 물건을 가져오면 되나요?”

 

아뇨, 그냥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일단 들어갑시다

 

 

지선은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따라 현관문 바로 옆의 초인종을 눌렀다.

 

집보다는 아니지만 초인종도 오래되어 힘이 다했는지, 작은 벨소리가 울렸다.

 

벨소리가 울린 지 30초 정도 지났을 즈음, 안에서 백발의 할머니가 나와 지선을 반겼다.

 

 

누구셔요?”

 

... 안녕하세요

 

... 근데 누구신데 저희 집에 왔어요?”

 

아 그게... .. 여기가 박춘배 할아버지 댁 맞나요?”

 

... 얼마 전에 간 우리 할아범 집 맞는데, 누구셔요?”

 

 

집에 도착하기 전 할아버지 귀신과 입을 맞추길 다행이다.

 

집에서 나온 할머니는 할아버지 귀신과 똑같이 지선에게 존댓말을 썼다.

 

게다가 나이가 많으시지만 몸은 정정하신지 작은 지선의 목소리도 흘리지 않으시고 모두 들으셨다.

 

 

, 저는... 다름이 아니라 어르신분들 옛날에 어떤 일 하셨는지 인터뷰하러 왔어요

 

아 그래요? 난 또 예쁜 학생이 여긴 무슨 일로 왔나 했네, 들어와요

 

.. 실례하겠습니다

 

 

녹슨 대문을 지나 바로 보이는 마루, 마치 시골에 있는 집을 연상케 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간식 가져올게요

 

아 전 괜찮아요

 

사양마요, 손주 같아서 그래

 

 

할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지선은 할아버지 귀신에게 물었다.

 

 

저 할아버지, 그래서 저는 뭘 하면 되죠?”

 

별 거 없어요, 그냥 혼자 남은 우리 할멈, 쓸쓸할텐데 말동무 좀 해줘요

 

.. 그런데 전, 말 재주가 없는데..”

 

괜찮아! 내가 있잖아 지선아!”

 

 

지선이 걱정하고 있을 때 다정이 나타나 지선의 옆에 앉았다.

 

 

어떡해, 줄게 이런거 밖에 없네

 

 

할머니는 주방에서 멍이 든 사과를 깎아 지선에게 내줬다.

 

투박하게 껍질이 조금 남아있는 사과,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할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덜덜 떨며 사과를 계속 깎았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드셔요, 그런데 어떡하지 우리 할아범은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이 집에는 나만 있는데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다행이어요, 그래서 여긴 무슨 일로 왔어요?”

 

, 어르신분들 옛날에 있었던 일이나 그런 거, 알고 싶어서 왔어요

 

좋네요, 혼자라서 심심했는데, 근데 어떡하지 난 재밌는 이야기 못 하는데

 

괜찮아요, 그냥 옛날에 있었던 일 아무거나 말 해주세요, 아니면 할아버지랑 어떻게 지냈는지 말씀해주셔도 돼요

 

그래요? 우리 영감이랑 있었던 이야기라...”

 

 

할머니는 수십년전 할아버지와 처음 만났던 당시의 이야기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면서 지선은 할머니가 기죽지 않게 열심히 리액션을 넣었다.

 

수 많은 귀신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얻은 의사소통 능력.

 

다행이 이번 계기로 지선은 조금 더 성장했다.

 

 

그래서 영감이 어찌나 화를 내던지... 그래도 나중에는 나한테 그랬어요, 미안하고 고맙다고 이게 우리 할아범 말 버릇이거든요, 어휴, 나도 사과 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고 제대로 말도 못하고 가버렸네, 아직 못한 이야기 많았는데, 학생은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 ..아뇨 없어요

 

그래요? 혹시 좋아하는 사람있으면 꼭 망설이지 말고 하고 싶은 말 다 하셔요, 나도 우리 영감이랑 몇 십년을 같이 살았는데 아직 못한 말이 많아요

 

, 알겠습니다

 

 

할머니의 조언, 그 말은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다정의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하시다 갑자기 옛날에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시겠다며 안방으로 들어가 앨범을 찾아 들고 오셨다.

 

 

이거 옛날에 찍은 사진인데 한 번 봐요, 우리 할아범 사진도 있네

 

 

할머니는 오랜 시간 혼자서 지내며 하지 못한 말들은 계속 쏟아 부으셨다.

 

그리고 할머니의 말을 계속 듣고 있는 지선의 뒤에서 할아버지 귀신과 다정의 대화가 시작됬다.

 

우리 할멈, 손님 왔다고 신나서 목이 쉬어라 말하네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하겠어요!”

 

정말 고마워요

 

 

할아버지 귀신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할멈한테 너무 미안하네요, 분명 끝까지 같이 있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것도 못 지키고

 

남편 분이 이렇게 좋은신 분이니 할머니가 많이 그리워하시겠네요

 

우리 할멈, 글도 제대로 못 배워서 말하는것도 어리숙하고 어린 나이에 나한테 시집와서 자식들 키우느라 평생 고생만 하고, 내가 호강도 제대로 못 시키고 어떡해요, 혼자 남겨지게 해서 쓸쓸해서 어떡해...”

 

 

할아버지 귀신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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